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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

2023.03.16 TIL

by 치우치지않는 2023. 3. 17.

어제는 목요일로, 2교시에 데이터베이스 수업이 하나 있고, 한 타임의 공강 뒤 컴퓨터 알고리즘 수업이 하나 있던 날이었다. 이날 아침에 다이제와 단백질 음료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또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평소보다 쌀쌀해서 두꺼운 바지를 입고 나갔다.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옷을 입을 때, TPO 를 고려하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나의 경우 WTPO 인 것 같다. W 는 weather 의 w. 전날에 그 다음날 날씨를 미리 찾아보고, 옷을 골라두면, 예기치 못한 상황(눈, 비)에도 대비할 수 있고, 체온을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건 좋은 습관으로 무의식의 책장 속에 잘 꽂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엄마 차를 타고, 역으로 갔다. 엄마 차에선 엄마와 간단히 대화를 나누거나, 대화할 거리가 많지 않다면 아침 확언을 한다. 아침 확언을 하고 나서 내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서 철산역에 도착하니, 아무래도 출근 시간이 갓 지난 때여서 그런가 역에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많았다. 나는 대림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열차의 맨 끝 칸으로 이동했고, 사람들로 꽉 차서 옆구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지하철에 몸을 억지로 우겨 넣었다. 사람이 별로 없을 때는 이북을 읽는데, 이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숨 쉴 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잠깐이지만 만약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숨 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다면, 간단하게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지난 이태원 압사 참사 사고 이후 얻은 가슴 아픈 교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산디지털단지, 남구로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졌고, 나 또한 그 행렬의 일원으로 대림에서 내려 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갔다. 이럴 때 스스로를 보면서 참, 여유 없게 산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긴 하지만, 쓸데없는 시간을 죽여 더 훌륭한 일을 하는 데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이전 생각을 덮어버리곤 한다. 대림에서 이대역까지는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다. 대림에서 내린 대부분의 인파는 강남 가는 2호선을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학교가 강남에 위치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2호선에서는 늘 이북으로 책을 읽는다. 어제 읽은 책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때문에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도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데일 카네기의 책들은 이런 면에서 참 실용적이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문장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그렇게 두꺼운 이유는, 그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독자를 설득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걱정들이 숱하게 많다. 작게는 오늘 살이 찌면 어떡하지, 수업 시간에 늦으면 어떡하지부터, 크게는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노년에 쓸 돈이 없으면 어떡하지, 건강이 안좋아져 큰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존에 관련된 큰 걱정들까지.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본능에 굴복하여 살면 걱정이 지배하는 삶, 삶이 주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뻔하다.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그러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삶이 주는 풍요로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단계가 바로 걱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마음과 생각을 잘 들여다보고, 편한 상태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자. 필히 그 고통의 저 편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론 걱정을 없애면 된다. 내가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그 걱정이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걱정을 그려놓은 뒤 칠판을 지우개로 싹싹 지우는 상상을 하거나, 걱정이 그려진 종이를 점이 될 때까지 꾸깃꾸깃 접어 10km 밖에 던져버리는 상상 등. 이렇게 하면 내 정신이 온전히 현재로 돌아왔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홍대입구까지 오면, 나는 네이버 지도를 키고 버스 상황을 확인한다. 이대역에서 내리는 것이 나을까, 신촌역에서 내리는 것이 나을까. 사실 왠만하면 이대역에서 내리는 것이 안정적이다. 버스를 놓치더라도 대체 버스가 있고, 둘 사이의 배차 간격이 4분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집에서 여유롭게 출발하기도 해서 그냥 이대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대역에서 내려서도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갔다. 사실 곧 버스가 올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해 뛰어갔다는 게 더 정확할 듯 하다. 그렇게 시간을 딱 맞춰 버스를 탔고, 강의실에 20분 일찍 도착했다. 강의실에 도착해서 데이터베이스 강의 자료를 다운로드 받았고, 카톡으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었다. 윤선 언니가 예상보다 늦을 것 같다고 했고, 한현경은 안올 것 같았고, 지원언니는 오는 중이랬다. 얼마 뒤 지원언니가 왔고, 열심히 수업을 들은 뒤, 간단한 질문을 하고 같이 팀토방에 갔다. 이때 내가 한 질문은 디폴트값 설정에 대한 것이었는데, 외래키의 경우 기본키값만 혹은 기본키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 null 값으로만 설정할 수 있다고 참조 무결성 제약 조건에서 그렇게 써 있었는데, 그렇다면 디폴트값 역시 기본키 중 하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교수님께선 이 경우는 예외라고, 이미 개발자가 디폴트값을 쓴다고 명시했기에 그렇다고 말씀해 주셔서 의문이 풀렸다. 또 하나 질문은 엔티티 무결성 조건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은 강의의 포커스의 측면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라 말씀해 주셔서 납득되었다. 질문이 끝난 후 팀토방에 가서 나는 다이제와 단백질 음료를 먹었고, 언니는 내가 가져온 텀블러에 물을 타서 마셨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가 밥도 제대로 안먹고 살면 안된다고 해서 같이 포관에 가서 미니 치킨을 하나씩 먹었다. 건강을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늘 감사해야 할 일인 듯하다. 밥을 먹고 나서 언니가 생협에서 과자를 하나 사고 싶다길래, 지난 학기에 정사윤 수업을 들으면서 자주 들렀던 종합과학관 D동 생협에 언니를 데려다 주었다. 언니는 공대 생협에 팔지 않는 생바나나 라떼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나는 크림 치즈 프레젤이 있다는 걸 알려주며 서로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생협 사이즈의 문제인 건지 공대생들이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공대 생협은 늘 붐비고 음식 종류도 한정적인데 이곳 생협은 한적하고 음식 종류도 훨씬 다양해 자연대 친구들이 조금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협에서 언니는 다이제 하나를 사고, 우리는 공대로 이동해 컴알 강의실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김)예린이를 만나 인사하고, 자리를 잡았다. 현경 언니가 컴알 수업엔 왔길래 왜 데베 수업은 안왔냐 물었더니 일이 너무 바빠서 철회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니는 지금 세브란스 병원 핵의학과 소속 랩실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데, ai 에게 모델을 학습시키는 중이었다. 사수 도움도 거의 없이 혼자서 끙끙 대더니 결국 뭔갈 성공해서 보여줬다. 누구 도움 없이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며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내가 언니였어도 할 수 있었을까? 컴알 수업은 너무 어려워서 수업의 20%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덕에 책을 사서 열심히 읽고 있다. 4월 7일까지 해야 하는 과제도 하나 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하나씩 해야 하는 것들을 독파해야 하는 듯 하다. 참 현경 언니는 무리하더니 결국 감기가 걸렸다. 나도 며칠 전 주말에 감기 기운이 살짝 도는 것 같았는데, 잠을 많이 자니 다행히 금방 회복되었었다. 언니도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감기가 빨리 나을텐데 쉬지 못할 것을 알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다. 내 친구들이 건강하게 살아서 나랑 오래오래 놀아주어야 할텐데. 컴알 강의가 끝나고 언니들은 정통공 수업을 들으러 갔고, 나는 ECC 신한 노트북실에 자리를 잡고, til 두 개를 쓰고, 독서를 했다. 석지영 교수의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그리고 나서 컴알 공부를 조금 한 뒤 ECC My del place 라는 푸드코트에 갔다. 여기는 이대 학생증으로 결제하면 15% 정도 할인을 해 준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키오스크에 학생증을 꼽기만 하면 자동으로 할인을 해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제 직원분께서 카드를 태그한 뒤에 결제해야 할인이 적용된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여튼 그렇게 할인을 받고 치즈 돈까스를 사먹었다. 그리고 나서 산책 겸 ECC 계단을 올라 이화동산으로 내려왔다가 토익 책 구경을 하러 ECC 교보문고에 갔다. 토익, 쉬울 줄 알았는데 난이도가 상당했다. 기출 문제집을 사서 여러 번 풀어보며 유형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경언니의 가르침에 따라 그렇게 공부하고자 한다. 책순이에게 서점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인데, 학교 안에 이렇게 큰 서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ECC 에 와서, 알고리즘 책을 읽고 난 뒤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아티클을 썼다. 석지영 교수가 하버드 법대 재학 시절 얻었던 가장 큰 가르침이, 글쓰기도 공부의 과정이니 완벽한 글쓰기를 하려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라라는 것인데, 이 구절을 읽고 고등학교 시절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예전에 하도 글이 쓰여지지 않아서 담임선생님께 고민을 토로했고,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글을 잘 쓰시니 그 분께 문의해라는 말씀에 따라 학년 부장 선생님께 찾아갔었다. 다짜고짜 선생님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 했더니 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주시며, 매일 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라고 하셨다. 그때는 입시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이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사치라 생각해 한 일주일 정도만 실천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내가 약 200일동안 꾸준히 til 을 쓰며 매일 글을 써 보니, 그때 선생님께서 주신 가르침이 얼마나 값진 가르침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처음엔 초라할지라도 매일 좋은 인풋(독서)과 출력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내 것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23세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모종의 깨달음의 시간 뒤에 아티클을 썼고, 2시간 동안은 정통공 SBY 시트를 작성해 제출하고 10시에 ECC 를 나왔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til 에는 내가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낸 부분만 작성했지만, ECC 에서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시간을 허투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오는 지하철에서는 자기관리론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을 캡처해 스토리에 올림으로써, 내일은 정말 걱정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렇게 철산역에서 엄마 차를 타고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전자기기 충전을 시켜 놓고, 쓴 물병을 꺼내놓은 뒤 폴킴의 '비' 라는 노래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이날 감사했던 것 5가지 

1. 걱정하지 말라는 깨달음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던 것 

2. 새로운 좋은 습관을 하나 발굴할 수 있었던 것 

3. 아티클을 남길 수 있었던 것 

4.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5.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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