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날은 원래 연남동에 놀러가려 했지만, 지원 언니가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져서 그냥 집에서 있다가 자스 스터디를 하러 학교에 갔다. 2. 집에 있는 시간동안에는 오랜만에 엄마 전공책을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서재에서 엄마 아빠 책을 읽는 것을 즐겨했는데 특히 엄마가 가진 미술책들 읽는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책이 모두 불어나 영어로 써 있는 바람에 아빠가 읽어서 해석해주지 않으면 내가 못 읽으니까, 그 핑계로 바쁜 아빠와 함께 붙어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달리와 모네의 책. 특정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모네와 달리의 그림은 내가 왜 이 그림에 끌리는지 처음으로 자답할 수 있었던 그림들이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영원함"을 표현했다는 점인 것 같다. 녹은 치즈처럼 흐물거리는 이 시계는 시계이지만 시계가 아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딱딱한 시계의 속성을 흐물거리는 속성으로 바꾸어버렸다. 주황색 시계는 딱딱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파리들이 날아와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시계가 제 기능을 하지 않아 부패해버렸다는 뜻이라고. 오른쪽 흐물거리는 시계에도 파리가 한 마리 앉아있다. 달리는 어렸을 때부터 곤충을 무서워하고 싫어했는데, 그래서 "부패"를 상징할 때 이렇게 곤충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곧 시간의 죽음, 다시 말해 영원 속의 공간임을 뜻한다.
시간이 멈춘 공간을 그려냄으로써 영원을 표현했다. 어렸을 때 죽음이 무서웠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나에게 이 달리의 영원을 표현한 그림이 상당히 큰 위로가 되었다.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달리가 그린 이 그림만큼은 영원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딴 얘기지만, 그래서 수학을 좋아했던 면도 있다. 수학에서는 영원함(infinity)을 정의하고 다루니까)
3. 책 읽다가 시간이 되어서 자스 스터디를 하러 갔다. 이날 모의 면접 주제는 스코프였는데, 연주 언니가 확실히 기술 면접 경험이 많아서 그런가 면접을 정말 잘 보았다. 여유있고 침착하면서도 해야할 말은 다 하는.. 나도 언니처럼 면접 잘 보고 싶다..
4. 면접이 끝난 뒤엔 예린이를 불러서 포포나무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흔쾌히 나와주신 오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꾸벅) 밥 먹은 뒤에는 시험 끝난 기념으로 예린이랑 학교 트랙을 10바퀴 돈 것 같다. 물론 걸어서^^
근데 정말.. 정말 좋았다. 날씨도 사람도 대화까지도.. 소소하지만 큰 행복. 무슨 얘기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시껄렁하게 보낸 시간들이 너무너무 소중했다.



5. 이렇게 행복한 산책을 마치고 이대역에 오는데 왠 음침한 목소리로 어떤 남자가 저기요 하길래 그냥 무시하고 갔는데 쫓아와서 다시 저기요 이래서 뒤돌아봤더니 혹시 남자친구 있냐고 없으면 번호 좀 줄 수 있겠냐고 묻길래 대답도 안하고 그냥 고개만 절레절레하고 다시 갈 길 갔다. 근데 왠지 느낌이 쎄해서 에타에서 찾아봤더니, 이 시끼 오늘 하루종일 정문 근처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 번호 따고 있었다. 사이비인 것 같다는 글이 있었는데.. 학교에 사이비 돌아다닌다고 풍문으로 들었지 이걸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다른 사람들한테 사기치면서 돈 벌어가지고 운영되는 집단들.. 그냥 너무 역겹고 인생 그렇게 낭비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6. 집에 와서 자스 면접 스터디 과제 제출하고 스터디 회의록 쓰고 gdsc 업무 몇 가지 하니까 금새 새벽 2시가 되어서 얼른 누웠다. 하는 게 많으니까 시간이 참.. 빨리 가는 듯.. 이러다 갑자기 백살 할머니 되는 건 아닐지..ㅠㅠ
이날 감사했던 일 5가지
1. 지원언니가 큰 병이 아니라는 거
2. 연주언니한테서 많이 배운 것
3. 예리니랑 같이 저녁 먹고 산책했던 것!
4. 아침에 여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
5. 자유롭게 숨쉬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 유럽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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