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_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끄적임
침실의 철학자는 우스꽝스럽다. 침실에 생각은 어울리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생각을 통하지 않는가?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 매력이 사라진다. (완전 공감)
사랑을 하는 이유는, 이상적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인데, 그 이상적인 존재가 나를 사랑한다? 그럼 그 사람은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잔인한 역설.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주위 것들로 사랑의 감정이 전이된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일이 더 쉽다. 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 이상적이어서. 그러니 이상적인 대상에게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 반대로 그 이상적인 존재가 부족한 나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어색한 일.
내 스스로에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신을 주지 않으면, 어떠한 사랑도 받는 것이 어색하다. 사랑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역습에 대비해야 한다..(내 얘기....)
보답받는 사랑을 할 땐, 내가 상처를 받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내가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나를 사랑해주는 대상에 대한 혐오로 전이된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 정작 그가 나를 사랑한 이후로는 그가 싫어진다.
우리 약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이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맞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원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완벽해서, 내 생존, 내 삶을 훨씬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그런데 그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그 도구는 내가 원했던 도구가 아님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니. (결함이 발견되었으니) 그 사람이 싫어지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꿈이 몽상에 그쳐 있는 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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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전 인연들이 생각났다. 꼭 남자친구만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다고 해준 모든 사람들. 다가와준 모든 사람들. 미안할 따름이다. 사랑에 대해 너무 모른 채로, 겁없이 사랑에 뛰어들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줄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던 교만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일이 생긴다면, 사실 그때 나는 당신을 싫어한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싫어했던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내게 화를 낸 후, 당신의 감정이 가라앉으시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엄마는 너에게 화가 난 게 아니야. 엄마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그랬어. 금방까지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기억해 두고만 있었는데, 이젠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해주고 아껴주자. 그 전까지는 쉽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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