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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

2023.03.19 TIL

by 치우치지않는 2023. 3. 21.

저녁 약속이 있는 무난한 일요일이었다. 늘 일어나던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게으름을 부리며 일어났다. 9시 즘이었나. 어제 못다 읽은 책을 마무리짓고 나선 어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만을 챙겨 쫓기듯이 집을 나왔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그대로 집에 눌러붙어있을 것만 같았기에. 애플워치로 도서관에 가는 시간을 재어봤다. 도서관에 가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에 시간의 변화를 좀체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시간을 재지 않으면 제아무리 집앞에 있는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을 묻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을 읽는 일. 정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 곧 사람을 숭고하게 만드는 일. 이날 읽은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학교에서는 늘 공학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문학 책을 찾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 편독을 합리화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곧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다. 특히 프루스트의 책은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기에 작가의 말을 해석하는 순간에서 오는 기쁨이 배가 되는 문학 중의 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수수께끼같은 텍스트를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정제해 내는 일이 문해력을 높이고, 나 스스로를 성장시켜주는 일임에 확신한다. 책과 나 둘만이 세상에 남겨진 순간은 시간조차도 감히 방해하지 못해 그렇게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책을 덮고 알고리즘 공부를 시작했다. 저녁에 강남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남은 3시간에 몰입하여 문제를 풀어냈다. 읽기와 쓰기를 바탕으로 생각이 꽤나 많이 쌓인 터라 문제를 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다만 답지가 없어 답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그렇게 문제를 다 풀고 4시에 도서관을 나섰다. 강남까지 가는 길엔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왠지 많은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엔 그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술집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더라.. 종종 이렇게 여럿이서 모이는 자리에 가면 순식간에 화제가 바뀌어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번 흩뿌려진 주제들은 종종 회수되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에 휩쓸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날도 무엇을 대화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 사람 한 사람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렇게 집에 왔고, 내일의 학교를 위해 얼른 잠에 들었다. 

이날 감사했던 것 5가지 

1. 하버드 행복학 강의를 다 읽은 것 

2. 원하던 책을 마음껏 읽은 것 

3. 알고리즘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 

4.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 

5. 주말에 사람도 별로 없는 도서관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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